2024 표어 "기도로 능력받고,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충만함으로 성숙하여지는 성도" (딤전 4:5)

[선교소식] 2018년 4월 미얀마 필리핀 양한갑 선교사 선교소식

필리핀에서 선교를 하면서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말 중에 하나는 필리핀으로는 선교사를 더 이상 파송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필리핀에는 선교사들이 너무 많고, 그들은 부자들이고, 그들은 선교는 하지 않고 골프만 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그렇지 않은 한 선교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존 드라이즈바하(John Dreisbach) 선교사가 어제 오후 4시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삶을 다 아시지만, 사람들은 그를 모릅니다. 그래서 누군가 한 사람은 그가 누구였는지 알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이 글을 씁니다.

     미국 선교사인 존(John)과 그의 아내 낸시(Nancy)를 처음 만난 것은 30년 전입니다. 저희가 1989년에 필리핀으로 처음 왔을 때 존과 낸시를 만났습니다. 낸시는 제 아내의 첫 번째 영어 선생님이 되었고, 그때부터 저희는 30년 지기 친구가 되었습니다. 존과 낸시가 휴가로 미국에 다녀올 때마다 그들은 저희를 위한 선물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존이 너무 좋아했던 김치를 담아서 답례하고는 했습니다. 함께 한국 식당에 가면 존은 주문했던 메뉴보다 반찬으로 나온 김치를 두 접시, 세 접시 비우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갔습니다.

 

    부활절 주일이 지난 다음 날, 4월 2일, 월요일 오후. 전화벨이 급하게 울렸습니다.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여보! 존이 쓰러졌어요. 빨리 병원으로 가야하니까 우리 차를 가지고 빨리 아파트 현관 앞으로 오세요.빨리요. 빨리!” 저는 반바지를 입은 채로, 슬리퍼를 신고 주차장으로 달려가서 차를 가지고 아파트 현관 앞으로 갔습니다.그리고 존과 낸시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헤드라이트를 켜고, 경적을 울리면서 달렸습니다. 사람들, 오토바이들,차량들이 모두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낸시는 차 안에서 계속해서 존에게 말을 했습니다. “여보, 숨을 깊게 쉬어 보세요. 잘 했어요. 한 번 더 해보세요. 잘 했어요. 존, 거의 다 왔어요. 조금만 참으세요. 모든 것이 괜찮을 거예요.” 낸시는 같은 말을 수십 번 존에게 하고 또 하고 했습니다. 존은 신음소리만 냈습니다. 집에서 출발한 지 15분 만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휠체어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저는 두 손으로 존을 안아 휠체어에 태우면서 “존, 병원이예요. 괜찮을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존은 고맙다고 했습니다. 병원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응급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저는 병원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에 다시 응급실을 향해서 뛰었습니다.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존은 시트 위에 앉아 있었고, 간호사들이 그의 입에 산소 호흡기를 설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존의 얼굴이 이상했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를 시트 위에 눕히더니 곧바로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습니다. 잠시 후에 전기 충격기까지 사용했습니다. 낸시는 제 이름만 불렀습니다. “Joshua, Joshua, Joshua.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손과 어깨를 잡아 주었습니다. 의사 두 명, 간호사 3명, 심폐소생술을 맡은 두 남자가 존에게 매달렸습니다. 모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20분 후에 의사가 저에게 와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운명하셨습니다.” 눈치를 챈 낸시는 다시 제 이름을 부르며 의사들에게 부탁해서 한 번만, 한 번만 더 전기 충격기를 사용해서 그를 살려보라고 했습니다. 이미 그의 모니터도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존은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지 40분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존 드라이즈바하(John Dreisbach). 그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Nigeria)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나이지리아에서 선교할 때 한센인들을 돌봐줬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존은 평상시에도 제가 섬기고 있는 한센인들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과 사랑이 있었습니다. 딸라교회에서 설교를 했을 때도 그는 다른 선교사들과 달랐습니다.성도들이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난 36년 동안 선교사로, 목사로, 신학대학 교수로 그의 전 삶을 필리핀 선교를 위해서 드렸습니다. 자녀들이 다 성장해서 지금은 미국과 태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손자 손녀들을 자랑할 때는 영락없이 바보 할아버지, 바보 할머니였습니다. 그리운 손자 손녀 곁에서 그들의 재롱을 보며 생을 마쳐도 누구 뭐라고 하지 않을 70살이 된 분들이었습니다. 한 달 전에 그들을 만났을 때, 이제는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그때도 존의 건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존은 아직 움직일 수 있으니 몇 년 더 섬기고 그때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는 미국 고향이 아니라 천국 본향으로 갔습니다.

    존을 붙들고 울고 있는 낸시를 바라보고 있는 일이 너무 가슴 아파서 병원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때 저는 형언할 수 없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필리핀에 살면서 그런 장엄한 석양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구름 기둥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형상이었습니다. 하늘 속으로 부터 눈 부신 빛이 힘있게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제 입에서“존이구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신실한 종을 저렇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데리고 가시는구나 했습니다. 순식간에 친구를 잃었지만, 그를 취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확신때문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을 선교사 아버지와 함께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보냈고, 젊어서는 본인이 선교사가 되어 36년 동안 필리핀에서 복음을 전파하다가 선교지에서 존은 그의 생을 마쳤습니다. 나는 그를 위대한 선교사로 기억할 것입니다. 그 훌륭한 선교사의 마지막 길을 제 손으로 배웅할 수 있는 영광을 주셨던 하나님께 깊은 감사드렸습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사명자의 길을 걸었던 존이었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선교지에서 태어나서, 선교지에서 생을 마친 위대한 선교사 존 드라이즈바하(John Dreisbach)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이 그의 아내 낸시(Nancy Elisabeth Driesbach)에게 특별하게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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